공포는 늘 어둠 속에 존재할까?
《미드소마 (Midsommar, 2019)》는 이 전제를 무너뜨리는 작품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자연, 푸른 초원, 활짝 웃는 사람들. 언뜻 보기엔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파고드는 섬뜩한 공포가 차곡차곡 쌓인다.
아리 에스터 감독은 전작 《유전 (Hereditary)》에 이어 또 한 번, ‘가족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통해 관객의 내면을 정조준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무대가 ‘대낮의 스웨덴’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다.
이 글에서는 《미드소마》의 줄거리, 주요 인물, 상징과 복선, 그리고 해석의 여지를 중심으로 영화가 왜 다시 보면 더욱 무서운지 탐구해보려 한다.
줄거리 - 광기의 축제에 초대받은 사람들
영화는 그녀의 여동생이 부모와 함께 동반자살을 택하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 트라우마는 대니의 삶 전체를 뒤흔들고, 이미 흔들리던 연인 크리스티안(잭 레이너)과의 관계마저 파국으로 몰고 간다. 크리스티안은 친구들과 함께 스웨덴의 작은 마을 ‘회르가(Hårga)’에서 열리는 미드소마 축제에 참여하기로 한다. 그는 사실 대니를 여행에 초대하지 않으려 했지만, 도의적인 책임감으로 마지못해 그녀를 동행시킨다.
스웨덴에 도착한 일행은 해가 지지 않는 한여름의 북유럽 들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축제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고, 자연은 아름답고, 모두가 순수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의식은 점점 기괴해지고, 축제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72세가 되면 자발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아텟스투판’ 의식부터 시작해, 외부인의 실종과 기괴한 음식, 혼합된 환각제 사용 등이 이어진다.
대니와 크리스티안은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 채 축제에 휩쓸리고, 일행 중 한 명씩 사라져간다. 마을 사람들은 점점 더 이방인들에게 집착하고, 대니는 어느 순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중받기 시작한다. 반면 크리스티안은 마을 여인 마야와의 강제적인 관계를 통해 고립되고 수치심을 겪는다.
마지막 의식 ‘청결제’에서는 대니가 “최고 여왕(May Queen)”으로 선출되고, 그녀에게 중요한 선택이 맡겨진다. 그녀는 결국 크리스티안을 포함해 제물로 바쳐질 인물을 선택하게 되고, 불타는 사원 안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니는 처음으로 웃는다. 그 웃음은 해방이자 새로운 가족을 얻은 안도감이기도 하고, 이성을 잃은 절규일 수도 있다. 그 복합적인 표정은 관객에게 해석의 몫을 남기며 깊은 여운을 준다.
출연 배우 - 캐릭터가 말하는 심리
플로렌스 퓨 (Florence Pugh) / 대니
플로렌스 퓨는 대니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통해 경력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녀는 슬픔, 공허, 두려움, 분노, 그리고 광기까지 폭넓은 감정선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특히 마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울고 웃는 장면에서는, 타인에게서 공감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녀는 결국 '공포 속에서 가정과 공동체를 찾은 인물'이 된다.
잭 레이너 (Jack Reynor) / 크리스티안
영화의 가장 불편한 캐릭터다. 명확하게 악인은 아니지만, 무책임하고 회피적인 태도로 대니에게 상처를 준다. 그는 대니의 상실을 공감하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논문 주제를 위해 문화에 접근한다. 회르가 공동체의 눈으로 보면 크리스티안은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그대로 드러낸 인물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가 희생되는 장면은 일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로 느껴지기도 한다.
펠레 (Vilhelm Blomgren) / 펠레
가장 이중적인 인물이다. 겉으로는 따뜻하고 섬세하게 대니를 위하는 듯하지만, 결국 회르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설득자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대니에게 “넌 가족을 잃었지만, 여기선 가족이 될 수 있어”라는 말을 반복하며 공동체의 심리적 포섭을 유도한다. 그 미소 뒤엔 명확한 목적과 계산이 있다.
그 외 인물
조쉬 (William Jackson Harper)
문화 연구에 집착하는 인물로, 무단 촬영으로 처벌받는다.
마크 (Will Poulter)
경솔하고 유치한 성격. 마을의 신성함을 모독한 죄로 희생된다.
마야 (Isabelle Grill)
회르가의 젊은 여성으로, 번식을 위한 의식 대상자로 크리스티안에게 접근한다.
모든 캐릭터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인간 군상의 상징’이다. 이기심, 무관심, 욕망, 외로움 등 각자의 성향이 이 공동체 안에서 시험받는다.
관전 포인트 - 다시 볼수록 무서운 복선과 상징들
✔ 태양 아래의 공포
공포는 어둠에 기대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드소마》는 해가 지지 않는 북유럽의 백야를 활용해, 밝은 빛 속에서 벌어지는 공포를 구현한다. 이 영화는 “밝다고 안심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포는 시각적 어둠이 아니라 정서적 고립과 심리의 파괴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 상징과 복선의 미학
오프닝 벽화: 영화 전체 줄거리가 압축된 벽화가 엔딩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곰: 곰은 희생의 상징이며, 크리스티안이 ‘곰의 탈을 쓰고’ 죽는 것은 그의 타락을 대변한다.
꽃과 자연물: 회르가 사람들은 자연과 융합되어 있으며, 꽃은 아름다움과 동시에 ‘질식’과 ‘구속’의 메타포다.
환각: 환각 장면은 대니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그녀의 불안은 화면의 일렁임으로 드러난다.
춤과 노래: 반복되는 민속 의식은 공동체의 질서 유지 도구이자, 외부인들을 세뇌시키는 수단이다.
처음 볼 때는 '이상하다'고만 느꼈던 장면들이 두 번째부터는 숨겨진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는 사실이 가장 소름 끼치는 대목이다.
✔ 대니의 변화
대니는 처음에는 외부인이었지만, 마지막에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있다. 이 변화는 피해자의 복수라기보다, 심리적으로 집단에 동화된 결과다. ‘마야퀸’이라는 상징적 역할은 단지 축제의 주인공이 아니라, 새로운 삶과 새로운 질서의 수용자임을 의미한다. 대니의 웃음은 명백한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그 웃음은 오히려 관객을 향한 질문이다. “너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미드소마는 ‘공포’ 그 이상이다
《미드소마》는 전형적인 호러 영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이 영화의 공포는 외부의 괴물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공포는 ‘공감받지 못한 슬픔’, ‘관계의 부재’, ‘자신을 향한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심리를 가장 은밀하고, 정교하게 파고든다.
이 영화는 한 여성이 자신을 지워가는 과정을 통해, 결국 ‘정체성’과 ‘위로’를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비틀려 있어서, 해피엔딩이라 말하기엔 찝찝하고, 비극이라 하기엔 완성된 느낌이 있다. 그렇기에 미드소마는 ‘다시 봐야 진짜 무서운 영화’로 손꼽히는 것이다.
당신이 이 영화를 두 번째 본다면, 분명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진실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이 영화는 진짜 공포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