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에 익숙한 관객조차도 경악하게 만든 작품, 바로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장편 데뷔작 《유전(Hereditary)》입니다.
단순한 점프 스케어에 의존하지 않고, 가족 드라마를 기반으로 점진적으로 공포를 쌓아올리는 이 영화는 관객의 심리를 파고드는 진정한 심리 호러입니다.
2018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로 “현대 호러의 새로운 표준”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줄거리, 출연 배우, 그리고 이 영화를 반드시 다시 보게 만드는 관전 포인트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헤레디터리》의 진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겠습니다.
줄거리 - 유전이라는 저주, 가족을 파괴하다
영화는 ‘그레이엄’ 가문의 외할머니 엘렌 리의 장례식으로 시작됩니다. 평소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살았던 엘렌의 죽음 이후, 딸 애니(토니 콜렛)는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불길한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애니는 미니어처 예술가로 집 안에서 모형을 만들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딸 찰리(밀리 샤피로)와 아들 피터(알렉스 울프), 그리고 남편 스티브(가브리엘 번)과 함께 살아가지만, 점차 가족은 균열을 겪기 시작합니다. 찰리는 엘렌 할머니와 유독 가까웠으며, 어디선가 ‘기묘한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후 일어나는 한 끔찍한 사건을 기점으로 가족은 완전히 무너져내립니다. 찰리의 죽음, 애니의 심리적 붕괴, 그리고 피터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현상까지… 영화는 점차 초자연적인 힘이 이 가문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줄거리의 전개는 느릿하지만, 섬세하게 공포를 조립해갑니다. 마지막 20분에 이르면 이야기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지점으로 치닫고, 관객은 '이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혼란 속에서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출연 배우 - 토니 콜렛의 역대급 연기와 강렬한 조연들
토니 콜렛 (Toni Collette) – 애니 그레이엄 역
이 영화에서 토니 콜렛의 연기는 단순히 뛰어난 연기를 넘어선 ‘경이로운’ 수준입니다. 특히 슬픔, 분노, 공포, 광기까지 오가는 감정의 파동을 얼굴 근육 하나하나로 표현해냅니다. 2019년 오스카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실제 후보에서 제외된 사실은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회자됩니다.
알렉스 울프 (Alex Wolff) – 피터 그레이엄 역
사춘기 아들 역할로 출연한 알렉스 울프는 극 후반부로 갈수록 눈빛과 표정만으로 깊은 내면 연기를 선보이며,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밀리 샤피로 (Milly Shapiro) – 찰리 그레이엄 역
기이하고도 순수한 소녀 찰리 역을 맡은 밀리 샤피로는 단 몇 분의 등장으로도 관객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됩니다. 그녀가 만드는 독특한 ‘딸깍’ 소리는 영화 전반의 긴장을 상징하는 요소로 사용됩니다.
가브리엘 번 (Gabriel Byrne) – 스티브 역
가족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중심을 잡으려는 인물. 이성적이지만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냅니다.
관전 포인트 - '복선'과 '상징'이 집요하게 설계된 심리 공포
《헤레디터리》는 단순히 한 가족이 악령에 시달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아래와 같은 관전 포인트를 중심으로 반드시 두 번 이상 봐야 진가가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1) 영화 속 복선과 상징
초반 장례식 장면부터 화면 곳곳에는 기괴한 문양과 낯선 인물들이 숨어 있습니다.
찰리의 취미인 ‘기이한 조형물 만들기’, 애니의 ‘미니어처 작업’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가족이 통제당하고 있다는 메타포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장면의 위치와 인물 배열을 보면,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된 의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가족 해체의 심리학적 은유
‘유전’이라는 단어는 단지 초자연적인 능력의 전달이 아니라, 트라우마와 정신 질환이 대물림되는 구조를 은유합니다.
애니의 어머니, 애니 본인, 찰리, 그리고 피터까지 이어지는 정서적 불안정성과 정신적 붕괴는 극 중 내내 묵직한 압박감을 줍니다.
3) 현실과 공포의 경계가 무너지는 연출
아리 애스터 감독은 관객이 공포를 느끼는 순간보다 그 직전의 정적과 조용한 불쾌감을 극대화합니다.
점프 스케어가 없지만, 밤중의 천장 모서리, 배경에 숨어 있는 인물 등 은근한 장면들이 반복 감상을 부르게 합니다.
<헤레디터리> 는 공포의 외피를 쓴 심리극이다.
《헤레디터리》는 무서운 장면만으로 승부하는 호러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가족', '유전', '정신 질환', '슬픔'이라는 실존적인 테마를 공포라는 틀에 담아낸 작품입니다. 그래서 처음 볼 때는 충격을 받고, 다시 볼 때는 구조와 의미에 감탄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심리극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반드시 다시 한 번 관람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 세계에 빠져드는 계기가 되어줄 것입니다.